2010년 8월 17일 화요일

죽어도 항생제를 먹겠다는 분들께

[항생제가 무조건 질병을 치료하는 것처럼 몸이 조금만 아파도 항생제처방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항생제는 무조건 치료를 한다는 맹신과 미신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항생제오남용을 하게끔 만듭니다.]

잠재적 살인자 슈퍼박테리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머리가 좋은 인간도, 덩치 큰 동물들도 아닌 바로 세균이다. 대략 0.5마이크로미터 정도 크기의 작은 세균이 인류를 포함한 많은 생물체를 질병에 걸리게 하고, 죽게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세균은 다른 고등동물과 달리 환경에 적응하는 유연성이 매우 뛰어나다. 이 세균을 잡기위해 개발된 항생제로 인한 내성이 생긴 슈퍼박테리아가 지금 소리 없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인류를 세균의 위험으로부터 구원한 항생제

항생제가 개발되기 전, 사람들은 세균으로 인한 감염 질환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영국인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1928년 포도상구균을 배양하던 중 우연히 푸른곰팡이가 포도상구균을 억제하는 것을 발견하면서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이 탄생했고,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의 폐렴을 치료함으로써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 후 항생제는 기적의 약이라 불리며 치명적인 세균 감염으로부터 많은 생명을 구했다. 현대 의학의 최대 업적이라 불리는 항생제는 현재까지 1천여 종이 넘게 발견, 개발됐고, 현재 수십 종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세균은 항생제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내성을 획득한다. 유전자 변이를 통해 항생제를 무력화하는 다양한 능력을 획득해 항생제를 사용해도 죽지 않는다. 이런 균들은 빠르게 증식할 뿐 아니라 내성 유전자가 다른 세균에게 전달돼 내성균의 생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된다. 생성된 내성균은 배설물, 오폐수, 지표수 등의 자연환경을 오염시키고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식용동물로부터 육류제품을 사람이 섭취할 때를 비롯해, 다양한 유기적 경로로 내성균이 생성되고 전달된다.

소리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슈퍼박테리아

세균의 저항에 맞서 인류는 계속적으로 메티실린, 반코마이신 등의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해왔다. 그러나 인류가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는 데 최소 10년의 기간이 필요하다면, 세균은 항생제에 노출된 후 1년 정도면 내성능력을 가질 수 있다. 애초부터 이 싸움의 승리는 세균에게 있다. 새로운 항생제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현대의학은 끊임없는 세균의 도전 앞에서 점차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항생제 내성균인 슈퍼박테리아가 등장하면서 의료계가 초긴장하고 있다. 몇몇 전문가들은 수년 안에 새로운 신무기의 항생제가 개발되지 않으면 항생제가 개발되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실제로 일본과 미국에서 반코마이신에 대한 민감성이 줄어든 황색포도상구균이 나타나고 있다. 반코마이신에 내성을 가진 병원성 세균이 출현하게 되면 의약계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것이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 통계에 의하면 해마다 약 200만 명의 환자가 병원 내에서 감염되고 있으며 이중 9만 여 명이 사망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병원 내 감염균의 70퍼센트 이상이 한 가지 이상의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내성균에 감염된 환자일수록 병원 입원기간이 길고 독성이 강하고 비싼 약을 쓰는 고통을 받고 있다.

2003년 영국에서도 5~10퍼센트의 환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감염되고 그 비율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보고됐다. 미국 미시간 주에서 2002년에 처음으로 반코마이신 내성 황색포도상구균(VRSA)에 감염된 환자가 발견됐다. 이처럼 1989년 이전에는 반코마이신 내성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보고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또한 VRSA와 함께 문제가 되고 있는 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VRE)도 1992년 국내에 처음 보고된 이래 최근 3차 의료기관에서의 내성률이 18퍼센트로 보고되고 있고, 환자의 직장감시배양에서도 VRE가 2~11퍼센트에 이르는 등 급증하는 추세에 있다.

슈퍼박테리아에 대한 위험성은 이제 우리의 코앞에 와 있다. 항생제 내성균을 ‘조용한 살인자(Silent killer)’라고 한다. 소리 없이 다가와 우리를 죽이고 있다는 뜻이다.

평소 항생제를 안 먹으면 내성균에 강할까?

사람들은 ‘나는 병원에 잘 가지 않고, 항생제를 잘 먹지 않으니 항생제 내성균과 상관없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철저한 오해다. 내성균의 문제는 그 사람이 항생제를 사용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균 자체가 벌써 특정 항생제에 대해 저항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항생제를 먹지 않아도 다른 곳에서 생긴 내성균이 내 몸에 침입하면 그동안 항생제를 사용해온 사람과 마찬가지로 항생제의 효과를 보지 못한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맹장수술을 받았다면, 그 병원에 오염돼 있던 슈퍼박테리아가 수술 중 감염될 수 있고, 그동안 항생제를 먹거나 주사 맞지 않았어도 침입된 슈퍼박테리아에 의해서 수술 부위는 아물지 않고 계속 화농이 일어나고 열은 올라가게 된다. 그래서 계속해서 항생제를 투여해도 슈퍼박테리아를 죽일 수 있는 항생제가 없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길을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가 부러지고 찢어지는 상처가 났는데 공교롭게 그 주위 환경에 슈퍼박테리아가 있어서 감염됐다면 위의 예와 마찬가지로 불행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상에서 사용되는 항생제 오남용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항생제 내성률이 매우 높은 나라다. 다소 감소하는 추세지만 항생제 처방률이 58.9퍼센트로 세계보건기구(WHO) 권장치인 22.7퍼센트보다 2~3배나 높다. 주요 병원 내 감염 세균으로 모든 베타락탐제(β-lactam)와 다른 약제에도 내성을 지니고 있어 감염되면 치료가 까다로운 내성 포도구균(MRSA)의 경우 1970년부터 내성균 발생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해 1995년부터 지금까지 70퍼센트로 높은 내성률을 가지고 있다. 2000년 기준으로 스웨덴 0.6퍼센트, 호주 9퍼센트, 아프리카 15퍼센트, 스페인 28퍼센트, 프랑스 38퍼센트, 영국 40퍼센트, 미국 55퍼센트로 우리나라가 가장 높다.

우리나라도 2000년 7월부터 의약분업제도가 도입돼 임상에서의 항생제 사용은 반드시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제도는 의약품 오남용의 관행을 줄이고 적정 사용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2002년 의원외래 항생제 사용량은 0.34DDD(Daily Defined Dose, 성인에서 주요 적응증에 사용되는 의약품의 일일 추정평균유지 용량, OECD 국가의 항생제 평균 기준단위 사용량)/1000명/일 이었는데 2003년 사용량은 0.28DDD/1000명/일로 감소했고, 또한 몇몇 규모가 큰 병원들은 병원 내 관리 시스템을 이용해 항생제 사용을 관리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도 항생제 남용에 따른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내성균의 생성을 감소시키고 항생제 사용을 적정화시키려는 노력이 다각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하고 있다.

비임상, 축산에서 사용되는 항생제 오남용

축산장이나 양어장에서 항생제는 질병치료, 질병예방, 성장촉진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최근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축산에 항생제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많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한 예로 노르웨이에서는 어류 양식과 관련해 어류 방역제도, 백신 개발 보급, 어장의 적정 이용 등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제도의 도입을 시행하면서 항생제 사용을 줄여 오히려 양식 생산량이 증가하는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비임상에서의 항생제 사용이 자유롭다. 수의사의 처방으로 사용되는 약은 대략 8퍼센트 정도고 나머지는 농가의 자가 치료 및 예방용으로 판매되고, 사료 첨가제로 사용된다. 이렇게 사용된 항생제는 내성균 문제뿐만 아니라 항생제가 기준치 이상으로 잔류된 채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최근 한국소비자보호원이 국립수의과학검역원과 공동으로 전국 4대 도시의 도축장, 백화점 및 할인마트 등에서 판매하는 국내산 및 수입산 육류 300점(쇠고기 120점, 돼지고기 120점, 닭고기 60점)을 수거해 항생제 등 잔류물질에 대한 시험 검사 결과, 쇠고기에서는 잔류물질이 검출되지 않은 반면 돼지고기 2점(1.6퍼센트, 120점 대상, 국산 포장육)에서 허용 기준치를 초과하는 설파제가 검출됐다.

뿐만 아니라 2002년 국민 섭취빈도가 높은 식품에 식중독균 및 대장균군에 항생제 내성균의 분포에 대한 모니터링 시험결과 대상 식품에서 검출(63퍼센트)된 대장균군 중 93퍼센트가 항생제 내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특히 4종류 이상의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가진 ‘다제 내성균’이 12퍼센트나 됐다. 또한 일부 식품에서 검출된 식중독균들의 내성률은 최저 56퍼센트에서 최고 100퍼센트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상당히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병원의 환자 등에서 분리된 균이 아닌 우리가 흔히 접하고 있는 식품 중에 오염돼 있는 균들도 항생제 내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비임상에서 사용되는 항생제 대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 수의사 처방에 의해서 항생제를 사용하게 하고, 점차 항생제 사용을 줄여가면서, 항생제 사용에 의존하지 않아도 생산량이 줄지 않을 수 있는 과학적이고 위생적인 영농관리 제도의 개발 및 보급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들어 돼지 사육에 있어서 무항생제를 선언하는 농가가 생기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는 21세기 공공보건에 가장 큰 위협을 끼치는 것은 항생제 내성 세균이라고 하며 그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이미 1996년부터 체계화된 연구를 실시해오고 있다. 또한 2000년 9월엔 항생제 내성에 대처하기 위한 토론토 선언(Toronto declaration to combat antimicrobial resistance)이 있었다.

그 내용은 △모든 병원과 지역 사회에서 항생제 내성의 지속적 감시 △동물에게 사용되는 항생제 오남용의 방지 △환자에 대한 항생제의 올바른 사용 △항생제를 처방하는 의료인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 △신 항생물질 개발 등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비자보호원의 식품중의 항생제 내성균 모니터링 사업결과 2003년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청에 ‘국가항생제안전관리사업’이 수립돼 항생제 내성균 저감을 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항생제 내성률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환자들은 감기와 같은 항생제로 해결되지 않는 병들에 대한 항생제 요구를 줄이고, 의사가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항생제를 요구해선 안 된다. 또한 처방받은 약을 중간에 복용 중지해 미생물의 항생제 저항력을 키워주지 말고, 증상이 없어져도 처방받은 약은 끝까지 먹도록 한다. 본인이 아닌 다른 이에게 처방된 항생제도 함부로 복용하면 내성균이 증식할 수 있으므로 복용을 삼간다. 또한 개인위생을 철저히 함으로써 내성균 감염 경로를 차단해 항생제 내성균 오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내성률을 줄이는 중요한 작은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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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한국소비자보호원 식품미생물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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