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서울 성동구 금호동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3인조 혼성 트리오 '거북이'의 가수 임성훈(38)씨.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이었다. 임씨는 한때 몸무게가 110㎏을 넘는 비만이었고, 3년 전에도 심근경색증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이 병은 심장에 영양을 공급하는 관상동맥 일부가 좁아지거나 막혀 혈류가 차단되면서 심장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병이다. 고혈압, 당뇨, 고(高)콜레스테롤, 흡연 등이 주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임씨 경우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대장암·유방암·전립선암·심근경색증·당뇨병 등 이른바 '5대 서구형 질병'에 걸리는 30~50대의 젊은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 병은 서구에서는 주로 60~70대가 많이 걸리는 질병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층에서 발병률이 높지만 '이 나이에 설마'라는 이유로 증상이 나타난 뒤에도 병원을 늦게 찾아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올해 33세인 회사원 박모씨의 경우가 그렇다. 지난해 말부터 대변을 볼 때 피가 묻어 나오고 변 굵기가 예전보다 가늘어졌지만 박씨는 나이만 믿고 병원을 찾지 않았다. 그러다 이달 초 변비 증상이 심해진 뒤 대장 내시경을 받았다가 대장암 3기 진단이 내려졌다. 박씨는 지난 27일 대장의 반을 잘라내고 주변의 림프절도 긁어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상황은 유방암도 마찬가지다. 사무직 회사원 김모(31·여)씨는 올해 초 왼쪽 유방에 1㎝ 크기의 딱딱한 멍울이 잡혔다. 집안에 유방암 환자도 없는데다 '설마'라는 생각에 유방암 검진을 차일 피일 미루다가 지난 달 유방촬영술과 조직 검사를 받았다. 진단은 유방암 2기. 김씨는 현재 왼쪽 유방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다. 지난해 30대 이하 유방암 환자는 9395명으로, 전체의 11%를 차지한다. 유방암 환자 10명 중 1명은 20대와 30대라는 얘기다. 40대 유방암 환자는 약 3만 명으로 이 연령대가 유방암 발생 최다 연령층이다.
전립선암은 나라와 지역을 불문하고 70대 이상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나라 50대 이하 전립선암 환자는 3042명, 60대는 8341명이다. 이들이 전체 환자의 45%를 차지했다. 서양의 경우 그 비율이 40% 선이다.
'5대 질병' 가운데 최근 들어 젊은층이 많이 걸리는 질병으로 꼽히는 것이 심근경색증이다. 고려대병원 심장내과 오동주 교수는 "30대 심근경색증 환자들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불과 수천명 수준이었으나 작년에 2만8000명까지 늘었다"며 "젊은 환자들은 방심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활동하다 숨어 있던 심근경색증으로 돌연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심근경색증 발생에는 우리나라의 높은 흡연율(52%)도 영향을 미친다. 전남대병원 심장내과 정명호 교수는 "40세 이하 젊은 환자의 85%는 흡연자"라며 "이들은 재발의 위험도 높기 때문에 한 번 발병하면 장기적인 집중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뇨병의 경우 40대 남성부터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50대 이후에 주로 발병하던 병이었다. 하지만 작년 남자 당뇨환자를 살펴본 결과 50대에 최대치가 된 후 60·70대에서 평행선을 그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나이가 많을수록 당뇨병 발생률이 높은 서양과 비교하면 한국 남자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당뇨병 환자와 병으로 진단되기 직전 단계인 내당능장애 인구까지 포함하면 현재 국내 50대 남자의 25.1%가 당뇨병 위험그룹에 속한다(국민건강영양조사·2005년). 60대는 24.4%이다.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김광원 교수는 "40대와 50대 한국 남자는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계층"이라며 "여기에 높은 흡연율과 비만 인구의 증가로 이들 계층에서 서구식 질병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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